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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행사·공연

암행어사 박래겸의 일기

  • 작성자학예연구실
  • 작성일시 2020.12.21
  • 조회수1465

암행어사는 어떻게 임명되고, 어떤 임무를 수행했을까요?
평안도 암행어사로 임명된 박래겸의 『서수일기』에는 이러한 과정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래겸의 서수일기를 통해  암행어사의 활동 모습을 살펴보도록 해요.



<음성 및 자막>

승정원에서 사일이 나와 왕의 명령을 전했다. 창덕궁 희정당에 들어가 왕을 뵈었더니 직접 봉서 한 통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지방으로 내려가 임무를 잘 수행하거라." 나는 소매 속에 봉서를 넣고 물러났다.

 

봉서에 쓰인 대로 서대문 밖으로 나와 조용한 곳에서 뜯어보니 평안도 암행어사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봉서와 함께 사목책 한 권, 마패 하나, 유척 두 개를 받았다. 봉서를 받은 때가 조회를 하러 나갈 즈음이라

미처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못하고 급히 떠나야 했다.

 

해진 옷에 부서진 갓 차림으로 조랑말에 걸터앉아 수행하는 사람들과 길을 떠났다. 수행원과 세 갈래로

흩어졌고 나는 동생과 함께 길을 떠났다. 가리탄이라는 지역에서 조금 쉬면서 술을 마셨다. 가게 주인은

마을에 흉년이 든 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어서 전임 수령의 잘잘못과 간사한 향리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금천을 지난 지역에서는 백성이 굶는 일이 너무 심해서 나그네가 돌아다니며 구걸을 했고,

백성의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다.

 

그런데 수령이 굶주리는 백성을 도와주는 일에 지나치게 엄격해서 백성이 호소할 곳이 없었으니,

매우 슬픈 일이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 순안현 관문 밖에 도착했다. 큰소리로 "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니 사람들이

두려워 피했다. 아헌에 들어가 한참 뒤에 사람들이 차츰 모여들더니 병풍을 펼치고 등불을 밝혀 점점

위엄 있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루 종일 문서와 장부를 조사하고 심문하여 벌을 주었다. 업무 조사가 끝나자 곧바로 수령을 파면하고 관아의

창고를 봉해서 잠그게 했다. 비록 공무를 집행하는 것이지만, 나는 수령과는 친분이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막>

본 영상은 박래겸의 서수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상입니다.

서수일기는 박래겸(朴來鎌,1780~1842)이 약 4개월간 평안도 암행어사로 임무를 수행한 내용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박래겸은 1822(순조 22)홍문관 교리 재임 시 암행어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서수일기에는 암행어사의 임명, 여정, 업무 수행 내용 등이 나와 있습니다. 서수일기는 암행어사의

실제 활동 모습과 19세기 조선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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