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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선비의 편지

  • 작성일 2020.04.06
  • 조회수369
온라인 소식지 2020년 4월 선비의 편지
이달의 선비(2020년 4월) -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 Seoae Ryu Seong-ryong 류성룡柳成龍(1542~1607)은 조선시대 중기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입니다. 그는 경상도 의성義城에서 출생하여 1564년 생원生員·진사進士가 되었고 성균관成均館에서 수학하였습니다. 1566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며 1590년에는 우의정, 1591년에는 좌의정을 역임하였습니다. 류성룡의 능력은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난 이후의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영의정 자리에 올라 왕을 수행하는 한편, 전국 각지에 격문(檄文, 격려시키는 내용의 글)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고 훈련도감訓鍊都監을 설치하여 군대를 편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임진왜란에 대비하여 이순신을 정읍현감에서 전라도좌수사로 천거한 것도 그의 업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1598년 이후에는 고향인 하회마을로 낙향하여 후학양성과 저술에 힘썼으며, 1604년에는 임진왜란에 대한 회고록이자 중요한 역사기록인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헌신적으로 극복하고, 후일을 대비한 명재상 류성룡의 삶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징비록懲毖錄〉이란 무엇인가. 임진란 뒤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여기에 간혹 난 이전의 일까지 섞여 있는 것은 난의 발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중략) 〈시경詩經〉에 이런 말이 있다. ‘내 지나간 일을 징계[懲]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毖]하노라.’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징비록〉을 쓰는 연유라 하겠다. -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 자서自序 가운데
[글씨로 보는 선비의 향기] 일에 임할 때는 제사를 받들 듯이 신중히 하라. 承(받들 승) 事(일 사) 如(같을 여) 祭(제사 제) 석전石田 황욱黃旭(1898~1993)이 쓴 글씨입니다. ‘承事如祭승사여제 七峰居士石田칠봉거사석전’이라 적혀 있습니다. ‘承事如祭승사여제’라는 말의 뜻은 일에 임할 때에는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신중히 처리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의 어원은 유학의 한 갈래인 성리학性理學의 창시자인 주자朱子(1130년~1200년)의 <경재잠敬齊箴>에 있습니다. 경재잠은 자신을 경계하기 위한 교훈을 적은 160자의 짧은 글입니다. 원문의 문장에서는 ‘出門如賓출문여빈 承事如祭승사여제’가 한 구절을 이루고 있습니다. 글의 내용은 ‘문을 나서 밖에 나가서는 손님을 대하듯 겸손하고, 일을 처리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신중히 처리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뿐 아니라 중국의 학자들도 경재잠의 구절을 따라 쓰며 자신의 마음을 경계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일에 임하여 늘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자 하였던 선비의 마음가짐이 이 글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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