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전시
석전실 내부 사진
Seokjeon Memorial Room석전기념실
석전기념실은 손바닥 전체로 붓을 쥐는 ‘악필법握筆法’으로 널리 알려진 서예가 석전石田 황욱黃旭(1898~1993)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석전기념실은 1999년 석전의 막내아들 황병근이 5천여점의 수집품을 국립전주박물관에 기증하면서 2002년 11월 처음 문을 열어 현재까지 상설전시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2023년, 석전의 30주기를 맞아 전시실을 새롭게 꾸며 석전의 서예작품을 비롯한 문방사우, 옛 책과 편지와 수집품 등을 전시하고 석전의 삶과 작품을 보다 친숙하게 소개하는 영상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의 석전기념실에서 역경을 극복한 강인한 의지와 불굴의 예술정신으로 이루어진 석전의 삶과 그 속에서 탄생한 개성적인 글씨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석전 기념실
석전 기념실 내부 배치도

석전의 서예

  • 401운강서실
  • 402오언시병풍
  • 403만세심학
  • 405휴금하만사
  • 406강구연월
  • 407온고지신
  • 408칠언시병풍

석전의 생애

  • 404석전 황욱선생 유품

평해황씨 유물

  • 409거문고

수집품

  • 410영조어필
  • 411김창집이 쓴 간찰
  • 412반계수록
닫기

홀로 걸은 서예의 길(1965년, 68세 이전)

전시실 소개

젊은 시절의 황욱은 중앙 서단에 나서지 않고 홀로 서예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때의 작품에서는 익히 알려진 황욱의 글씨와는 다른 반듯하고 단아한 서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황욱은 1920년 23살 때 처숙부 노병권盧秉權과 함께 금강산 돈도암頓道庵에 머무르며 십년동안 동진의 왕희지王羲之, 원나라 조맹부趙孟頫의 글씨를 배웠다고 전하며, 1930년 33세 때 고향에 돌아와서는 조선후기 서화가로 널리 알려진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를 사숙私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57세 때는 한국전쟁에 따른 집안의 어려움으로 전주와 고창에 은거하며 서예와 시, 그리고 거문고로 한적함을 달랬다고 합니다.

운강서실 이미지, 작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요작품 설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주요작품

운강서실 雲岡書室∥석전 황욱石田 黃旭(1898~1993)∥1964년∥황1319∥황병근 기증
황욱이 1964년 67세 가을에 쓴 작품으로 손바닥으로 붓을 감싸 쥐는 악필법 이전의 글씨이다. 단정한 해서楷書로 말년의 독특한 글씨와는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황욱은 잘 알려진 석전石田이라는 호 외에도 이 작품에 쓰인 금강산인金剛山人, 또는 몽유금강산인夢遊金剛山人을 쓰기도 했다. 이는 1920년 처숙부 노병권盧秉權과 함께 금강산 돈도암頓道庵에 머무른 적이 있었기 때문인데, 십년동안 동진의 왕희지王羲之, 원나라 조맹부趙孟頫의 글씨를 배웠다고 전한다.

송곳을 잡아 모래 위를 긋듯(오른손 악필법:1965~1983년, 68~86세)

전시실 소개

황욱은 68세 무렵(1965년)부터 손이 떨리는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 손바닥 전체로 붓을 쥐는악필법握筆法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붓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악필법을 구사하던 때의 글씨이지만, 작품에 따라 부드럽고 아름다운 붓의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황욱은 자신의 악필법과 글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법으로 하면 힘이 들어가 붓이 흔들리지 않는 대신 고도의 수련이 필요합니다. 글씨는 송곳을 잡아 모래 위를 긋듯 하고 머루를 때는 진흙 위에 도장을 찍는 것 같이 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곱게 쓸려고 하는데, 그보다는 필법을 섭렵하고 정심으로 써야 합니다.”
황욱은 76세 때인 1973년 전주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동아일보 초대전과 부산에서 열린 부산일보 초대전 등을 통해 글씨로 큰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초서오언시병풍(1977년 작) 이미지, 작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요작품 설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주요작품

초서오언시병풍 草書五言詩屛風∥석전 황욱石田 黃旭(1898~1993)∥1977년∥황1287∥황병근 기증
1977년 황욱이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유애사遺愛寺」와 맹호연孟浩然의 「춘효春曉」를 초서로 쓴 병풍이다. 황욱은 68세 무렵(1965년)부터 손이 떨리는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 손바닥 전체로 붓을 쥐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붓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악필법을 구사하던 때의 글씨이지만 부드럽고 아름다운 붓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황욱의 80세 때 글씨로 젊은 때의 글씨, 왼손 악필법을 쓰기 시작한 87세 이후의 글씨와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망중한忙中閑:분주함 속 한가로운 시간

전시실 소개

영상을 통해 황욱이 남긴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편안한 휴식 공간입니다.
황욱이 남긴 전주 오목대, 한벽당 요월대 현판을 비롯해서 고창 계산서원, 고창읍성,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정읍 무성서원 태산사 등의 현판과 전북의 여러 명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영상공간 입구의 양편에는 황욱의 삶과 글씨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생전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옛 영상과 아드님 황병근 선생의 인터뷰 영상을 상영합니다.

1. 석전 황욱의 현판 글씨와 함께 떠나는 전북 여행 영상 캡쳐 화면 / 2. 석전 황욱의 발자취 영상 캡쳐 화면 / 3. 나의 아버지 석전 황욱 영상 캡쳐 화면

멈추지 않는 굳센 붓길(왼손 악필법:1984~1993년, 87~96세)

전시실 소개

황욱은 87세 무렵(1984년)부터 손이 떨리는 증상이 더욱 심해져 오른손 악필조차 어렵게 되자 왼손 악필법을 시도하게 됩니다. 왼손으로 글씨를 썼기 때문에 글자의 오른쪽 어깨가 아래로 기울어지고 획도 왼쪽으로 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보다 더 붓의 움직임이 어려워졌지만, 만년의 왼손 악필법 시기는 오히려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시기이자 황욱의 힘이 넘치고 활달, 웅건한 서풍을 잘 보여주는 때입니다. 역경을 극복하며 완성한 독특한 서풍은 서예에 대한 그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황욱은 자신의 왼손 악필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글씨를 너무 써서 손에 무리가 온 것이지요. 그래서 악필을 쓴 건데 오른손으로도 안 되어 왼손으로 옮겼지요. 부분적인 기교나 잔글씨 쓰는 데는 불편하지만 글씨에 힘이 넘치고 활달하고 웅건해요.”
황욱은 늦은 나이임에도 88세 때의 미수米壽기념 초대전을 비롯해서 전북일보 초대전, 중앙일보 망백전望百展 등을 개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이후 1993년, 황욱은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1999년 문화예술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초서오언시병풍(1989년 작) 이미지, 작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요작품 설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주요작품

초서오언시병풍 草書五言詩屛風∥석전 황욱石田 黃旭(1898~1993)∥1989년∥황1294∥황병근 기증
황욱이 92세 때 쓴 초서 병풍 글씨 이다. 앞쪽 네 폭은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나오는 제갈량諸葛亮의 시이고, 뒤쪽 네 폭은 이백李白의 「오로봉시五老峯詩」이다. 황욱의 왼손 악필법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글자의 오른쪽이 기울어져 있다. 구불구불 떨리는 필법으로 글자의 마지막 획을 길고 강하게 표현하였고 글자의 크기, 획의 두께를 뚜렷하게 대조시켜 생동감이 두드러진다.

석전의 방

전시실 소개

황욱의 글씨 중에는 무이정사(武夷精舍) 잡영(雜詠)에 나오는 주자의 오언시의 문구를 옮겨 쓴〈금서사십년琴書四十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거문고와 독서로 지낸 사십년’ 이라는 뜻입니다. 이 글처럼 황욱은 글씨에 매진하면서 평생 독서와 풍류를 벗 삼아 지냈습니다.
석전의 방에는 황욱이 평소 늘 곁에 두었던 서책과 글씨 쓸 때의 도구들인 문방사우文房四友, 거문고와 가야금 등을 모아 전시했습니다.

황병근, 황병무 기증품

전시실 소개

석전石田 황욱黃旭의 막내아들인 황병근은 황욱의 작품 활동을 곁에도 도우면서 한편으로 우리 문화재 수집에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황욱이 세상을 떠난 후 1999년, 황병근은 황욱의 유작 418점을 비롯한 총 5,000여점의 유물을 기증하였습니다. 기증유물은 고서古書, 간찰簡札, 서화書畫, 고문서를 비롯하여 고고·미술·민속품 등을 아울러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황병근의 주선으로 평해 황씨 종손 황병무가 소장하고 있던 〈황종윤초상黃鍾允 肖像〉, 거문고 등의 가전유물을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간은 많은 사람들과 문화유산의 가치를 공유하려는 기증자의 뜻을 기려 앞서 살펴본 황욱의 글씨 외에 황병근, 황병무의 다양한 기증품을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하였습니다.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석전기념실 QR코드 https://jeonju.museum.go.kr/menu.es?mid=a10202060000

QUICK MENU

QUICK MENU 원하시는 서비스를 클릭하세요!

등록된 퀵메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