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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조사

곡성 연화리 지석묘 발굴조사

  • 조사대상
  • 조사기간 1993.11.11 ~ 1994.03.21
  • 조회수2,493

[1차: 1993. 11. 11 ∼ 12. 31(52일간), 2차: 1994. 3. 2 ∼ 3. 21(20일간)]

호남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에 분포하는 문화유적에 대하여 연합발굴을 실시하게 되었으며 이에 연화리 지석묘를 조사하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2차에 걸쳐 실시되었는데 1차는 1993년 11년 11일에서 12월 31일까지 실시되었고,2차는 1994년 3월 2일에서 3월 21일까지 진행되었다.
이 곳은 유적을 중심으로 유적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840m의 연산(連山)으로부터 동쪽으로 산줄기가 뻗어내려오다 끝나고 평탄한 지형이 펼쳐지는 대지에 연하리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이 마을의 북편에는 호남고속도로가 동서로 지나고 있다.
A지구는 속도로의 북편에 연접하여 현재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해발 102.5m의 평탄대지이다. B지구 역시 고속도로의 북편으로 A지구의 동쪽에 위치한다.
A지구와 B지구는 300m의 거리를 두고 있으며 그 동쪽에는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옥과천이 위치하고 있다. 한편 연화리마을내와 연화리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과치재에도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어 이 연화리 지석묘군은 과치재에서 옥과천 사이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지석묘군 중 일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1차와 2차에 걸쳐 조사된 유구는 지석묘와 옹관묘, 삼국시대 고분 등 27기에 이른다.
지석묘는 20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남방식으로 상석은 응회암 계통이며 형태는 일정치 않으나 대체로 넓고 높이가 낮은 돌들이 사용되었다. 지석은 석영암으로 하나만 있는 것, 2개 있는 것, 없는 것 등이 있다.
하부구조는 대형할석으로 축조된 것과 소형 냇돌을 이용하여 축조한 것 등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소형냇돌로 축조된 것은 바닥에 모두 냇돌을 깔아 시상(屍床)을 마련하였다. 유구의 장축은 대체로 동-서방향이다.
유구내에서는 유병식·유경식마제석검, 유경식마제석촉, 천하석제곡옥, 단도마연토기, 무문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로 보아 이들 지석묘는 송국리형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기원전 4세기경에 해당된다.
옹관묘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직경 50cm내외의 토광을 깊이 30cm 정도로 판 후 송국리형의 옹관을 정치한 것으로 송국리형단계에 해당된다.
삼국시대고분으로 유구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은 2기로 모두 석곽묘이다. 유구의 장축방향은 남-북향과 동-서향이며,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과 잔자갈을 부석한 것이 있다. 내부에서는 병, 개배, 단지, 방추차, 철촉, 철부, 철도자, 철겸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백제의 것으로 시기적으로는 6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연화리유적에서는 지석묘 뿐만 아니라 옹관묘, 삼국시대 석곽묘 등 다양한 유구가 조사된 곳이다. 이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지석묘의 일부분이지만 20기의 지석묘가 조사되어 이 지역 지석묘문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 조사되었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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