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전시
선비서예실 내부 사진
Gallery of Literati Calligraphy선비서예실
옛 선비들의 마음과 삶을 담고 있는 서예는 글씨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우리는 감동을 주는 명품이나, 편지나 일기와 같은 일상의 흔적으로 서예의 아름다움을 만난다. 조선 선비들이 글씨를 쓸 때는 옛 명필의 글씨나 그것들을 모아 만든 법첩法帖을 곁에 두고 좋은 글씨를 쓰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선비의 서예는 모범을 익히고, 그 바탕 위에서 창작하는 학습과 창조의 과정이었으며, 천년이 넘는 시간을 초월한 ‘법고창신法古創新’ 의 예술이었다. 선비서예실에서는 중국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를 비롯한 서예가들의 법첩과 김구金絿(1488~1543), 한호韓濩(1543~1605), 이광사李匡師(1705~1777), 정조正祖(재위 1776~1800) 등 조선시대 선비와 왕의 글씨로 조선 서예의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은 고전을 공부하며 예술세계를 이루어갔던 선비 서화가의 본보기로 그의 글씨와 사군자는 선비들이 붓을 들며 가졌던 마음가짐과 정성을 그대로 전한다.

서화류 전시 교체에 따라 전시품 변동이 있습니다.

선비서예실
선비서예실 내부 배치도

조선, 선비를 기르다

  • 101서문영묘지명
  • 102소학
  • 103김희 호패
  • 104관복
  • 105송시열 초상
  • 106인보첩

선비, 조선을 이끌다

  • 107서안, 벼루
  • 108혼천의
  • 109목민심서

문화, 선비 정신을 지키다

  • 110전주 류씨 종중 분묘 출토 명기
  • 111전주부지도
  • 112책가도
  • 113승경도
  • 114이정직 서화첩
  • 115동의보감, 약연
  • 116한국의열록
닫기

명필과의 만남, 법첩法帖

전시소개

선비의 서화는 가슴 속의 문기(文氣, 문인의 취향과 기운)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예술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선배들의 흔적을 연구하며 따라 쓰고 그렸던 선비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선비들은 옛 명필의 글씨를 동경하며 그들의 필적을 늘 곁에 두고 감상하며 글씨를 연마하였습니다. 서예가는 글씨를 보고 쓰는 방법인 임서臨書를 위해 명필의 필적을 모은 법첩을 필수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중국의 왕희지王羲之(303~361), 안진경顏眞卿(709~785), 미불米芾(1051~ 1107), 조맹부趙孟頫(1254~1322), 동기창董其昌(1555~1636) 등은 물론 조선의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705)를 비롯한 조선의 선비들의 글씨도 법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조선 선비의 서예

전시소개

조선 전기의 서예는 중국 원대의 시문서화가 조맹부趙孟頫(1254~1322)의 글씨를 기본으로 한 송설체 松雪體가 주류였지만, 점차 조선적인 서예를 찾고자 했던 노력은 한호韓濩(1543~1605)의 석봉체石峯體로 귀결됩니다. 서예의 고전을 탐구했던 조선 후기 선비 서예가들은 다시 왕희지 글씨를 연구했습니다. 이서 李溆(1662~1723)는 왕희지의 해서, 송설체, 미불米芾의 글씨체를 융합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서맥은 윤순尹淳(1680~1741), 이광사로 이어졌습니다. 이서에서 이광사에게로 이어진 서예의 맥은 조선 후기 조선 고유의 서풍인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이루었습니다. 김정희金正喜(1786~ 1856)가 창안한 추사체는 한·중 서예에서 이상적인 요소들을 통합하여 새로운 조형미를 보여줍니다.

선비의 사랑방

전시소개

선비들이 글 읽고 글씨 썼던 사랑방 한 켠을 떠올려 봅니다. 아담한 서안書案(작은 책상)과 그 주위에는 선비들이 자주 쓰고 아꼈던 문방구들이 있습니다. 종이, 붓, 벼루, 먹 등 문방사우文房四友 또는 문방사보文房四寶[종이, 붓, 벼루, 먹]와 함께 필통, 붓꽂이, 연적이나 선비들이 좋아했던 도자기는 사랑방에 빠지지 않았던 일상용품이자 애장품이었습니다.

조선 왕실의 서예

전시소개

왕의 글씨는 『열성어필列聖御筆』의 간행이나 어필 석각石刻 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 보존되었습니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은 조선 전기의 명필로, 조선 서예에 송설체松雪體가 자리 잡는데 역할을 했습니다. 선조宣祖(재위 1567~1608)의 강한 필획에 빠른 필치의 글씨는 후대 왕들에게 충실히 계승되었습니다. 정조正祖(재위 1776~1800)는 당당하고 시원한 글씨를 썼는데, 그의 글씨는 영조英祖I(1724~1776)의 글씨를 이어받으면서도 자신의 글씨체로 연마한 것이었습니다. 조선 왕실 서예는 선대왕의 글씨를 높이고 계승하는 경향이 뚜렷한 서풍으로 복고적인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선비 서화가 석정 이정직

전시소개

전라북도 전주와 김제에서 활동했던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은 공부하듯 옛사람들의 글씨를 연구하고, 수련하듯 붓을 들었던 선비 서화가의 본보기였습니다. 그는 고전을 따라 임서첩臨書帖과 재현첩再現帖을 남겼고, 고인古人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루어갔습니다. 이정직은 이미 당시에 대가로 인정받았으면서도 어느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늘 새롭게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성취는 조주승趙周昇(1854~1903), 송기면宋基冕(1882~1956), 유영완柳永完(1892~1953) 등 많은 제자들을 통해 전북 지역의 학문과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선비서예실 QR코드 https://jeonju.museum.go.kr/menu.es?mid=a10202010000

QUICK MENU

QUICK MENU 원하시는 서비스를 클릭하세요!

등록된 퀵메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