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보물보물 제 1876호완산부지도
- 분류
- 유물/과학기술/천문지리기구/지리
- 수량
- 10폭
- 지정일
- 2015.04.22.
- 시대
- 조선시대
완산부지도(完山府地圖)는 19세기 조선사회에서 제작된 병풍식 회화지도 중 주기면이 첨부된 유일한 것이다.
지도 구성에서는 다른 전주부 지도와는 다르게 남쪽을 오른쪽에 배치시켰다.
전주성을 지도의 중앙 우측에 배치시키고 중앙을 여백으로 처리한 것은 다른 지도에서 전주성을 중앙에 배치한 것과는 매우 다르다.
장소의 묘사에서는 원근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여백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산지로 둘러싸인 모습과 중앙 좌측에 묘사된 하천 유역의 여백은 고을의 평화로움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중앙 우측에 그려져 있지만 내용상 중심인 전주성의 모습은 다른 지도에서 구현하지 못했던 치밀함을 갖추고 있다. 성곽의 성벽 뿐만 아니라, 객사, 선화당, 동헌 등의 건물과 함께 경기전, 조경묘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으며 이와 함께 관아 사이로 묘사된 민가들은 민본을 중시했던 조선의 이념을 보여준다.
지도에서 상세히 묘사된 남고산성은 후백제의 역사 공간이 전주부의 지리에 중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양쪽에 주기면을 첨부한 것은 주관적으로 해석한 고을의 모습과 텍스트로 표현된 객관적인 내용을 동시에 보여 줌으로써, 지도에 담긴 내용이 허구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주기면에는 조선 정치 권력의 태생지임을 암시하는 텍스트가 곳곳에 담겨있다. 지도와 주기 내용을 종합하여 볼 때 『완산부지도』는 지리 지식의 편집을 통해 조선 정치 권력의 정신적 지주였던 풍패지향 전주부의 모습을 구현하고, 동시에 후백제의 도읍이었음을 보여줌으로써 19세기말 당시 전주부가 지향하고자 했던 모습을 재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지도는 2015년 보물 제1876호로 지정되었다.
장소의 묘사에서는 원근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여백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산지로 둘러싸인 모습과 중앙 좌측에 묘사된 하천 유역의 여백은 고을의 평화로움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중앙 우측에 그려져 있지만 내용상 중심인 전주성의 모습은 다른 지도에서 구현하지 못했던 치밀함을 갖추고 있다. 성곽의 성벽 뿐만 아니라, 객사, 선화당, 동헌 등의 건물과 함께 경기전, 조경묘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으며 이와 함께 관아 사이로 묘사된 민가들은 민본을 중시했던 조선의 이념을 보여준다.
지도에서 상세히 묘사된 남고산성은 후백제의 역사 공간이 전주부의 지리에 중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양쪽에 주기면을 첨부한 것은 주관적으로 해석한 고을의 모습과 텍스트로 표현된 객관적인 내용을 동시에 보여 줌으로써, 지도에 담긴 내용이 허구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주기면에는 조선 정치 권력의 태생지임을 암시하는 텍스트가 곳곳에 담겨있다. 지도와 주기 내용을 종합하여 볼 때 『완산부지도』는 지리 지식의 편집을 통해 조선 정치 권력의 정신적 지주였던 풍패지향 전주부의 모습을 구현하고, 동시에 후백제의 도읍이었음을 보여줌으로써 19세기말 당시 전주부가 지향하고자 했던 모습을 재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지도는 2015년 보물 제1876호로 지정되었다.
보물보물 제 1325호전 낙수정 동종
- 분류
- 유물/불교공예/의식법구/의식법구
- 수량
- 1구
- 지정일
- 2001.9.21.
- 시대
- 고려시대
이 범종은 일본인 다까하라 히미꼬 여사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소장해 오던 중 1999년 11월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해 기증·반환한 것으로,
종을 매다는 용뉴 부분의 훼손이 있기는 하나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종의 윗면은 수평에 가까우며, 어깨부분인 상대와 맨아래 부분인 하대에는 띠를 돌리고 그 안쪽으로 반원무늬와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상대와 연결된 사다리꼴 모양의 유곽 테두리에도 덩굴무늬를 얕게 조각하였으며, 유곽 안에는 작은 꽃받침을 갖춘 유두가 돌출되어 있다.
종의 약간 아래쪽 2곳에 배치되어 있는 당좌는 종을 치는 부분으로, 이중원의 테를 두르고 그 안에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당좌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배치된 4개의 비천상은 구름 위에 꿇어앉고 두손을 모아 합장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비천상은 다른 문양들보다 도드라지게 조각되어 있다.
종의 윗면은 수평에 가까우며, 어깨부분인 상대와 맨아래 부분인 하대에는 띠를 돌리고 그 안쪽으로 반원무늬와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상대와 연결된 사다리꼴 모양의 유곽 테두리에도 덩굴무늬를 얕게 조각하였으며, 유곽 안에는 작은 꽃받침을 갖춘 유두가 돌출되어 있다.
종의 약간 아래쪽 2곳에 배치되어 있는 당좌는 종을 치는 부분으로, 이중원의 테를 두르고 그 안에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당좌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배치된 4개의 비천상은 구름 위에 꿇어앉고 두손을 모아 합장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비천상은 다른 문양들보다 도드라지게 조각되어 있다.
보물보물 제 2033호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
- 분류
- 유물 / 과학기술 / 무기병기류 / 무기무구류
- 수량
- 2점(동검 거푸집 1점, 동검동과 거푸집 1점)
- 지정일
- 2019.6.26.
- 시대
-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약2세기)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 2점으로, 한 점은 세형동검의 거푸집만 새겨져 있고, 다른 한 점은 동검과 동과(銅戈)가 양면에 새겨져 있다.
초기 철기시대 호남 지역의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로서, 출토 고분의 편년 및 거푸집에 새겨진 세형동검의 형식 등으로 볼 때, 이 유물은 기원전 2세기경에 실제로 사용된 후 무덤에 매납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에 해당한다.
이 석제 거푸집은 실제로 사용흔이 남아 있으며, 출토 맥락과 공반 유물이 확실한 굉장히 드문 고대 청동기 생산 관련 유물로서 매우 귀중한 문화재이다. 거푸집의 상태 및 새겨진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 등이 상당히 자세하고 조각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유물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거푸집들이 발견된 사례는 10여 건이지만 대부분 출토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한계였다. 그러나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것이어서 지금까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므로 그 중요성은 다른 용범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또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서 당시 사회의 청동기 주조기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문화사적 중요성과 우수한 현존 상태, 조각 솜씨로 볼 때, 이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제작용 석제 거푸집은 보물로 지정해 보존 및 관리되고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이 석제 거푸집은 실제로 사용흔이 남아 있으며, 출토 맥락과 공반 유물이 확실한 굉장히 드문 고대 청동기 생산 관련 유물로서 매우 귀중한 문화재이다. 거푸집의 상태 및 새겨진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 등이 상당히 자세하고 조각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유물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거푸집들이 발견된 사례는 10여 건이지만 대부분 출토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한계였다. 그러나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것이어서 지금까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므로 그 중요성은 다른 용범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또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서 당시 사회의 청동기 주조기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문화사적 중요성과 우수한 현존 상태, 조각 솜씨로 볼 때, 이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제작용 석제 거푸집은 보물로 지정해 보존 및 관리되고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보물보물 제 2034호완주 갈동 출토 잔무늬청동거울 일괄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청동용구
- 수량
- 2점(5호 토광묘 출토 잔무늬청동거울 1점, 7호 토광묘 출토 잔무늬청동거울 1점)
- 지정일
- 2019.6.26.
- 시대
-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약2세기)
‘완주 갈동 출토 잔무늬청동거울 일괄’은 초기 철기시대인 기원전 2세기 경에 사용된 2점의 청동제 거울로서,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에 위치한 갈동 5호 및 7호 토광묘에서 각각 한 점씩 출토되었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잔무늬청동거울은 약 60점이며, 그 중 전(傳) 논산 잔무늬청동거울은 국보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고, 화순 대곡리 적석목관묘 출토 잔무늬청동거울은 함께 출토된 팔주령(八珠鈴), 쌍주령(雙珠鈴) 등과 함께 국보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완주 갈동 5호 토광묘와 7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잔무늬청동거울 2점은 전(傳) 논산 잔무늬청동거울이나 화순 대곡리 잔무늬청동거울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문양이 매우 정교하고 잘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초기 철기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잔무늬청동거울로 판단되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완주 갈동 출토 잔무늬청동거울 2점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이 명확할 뿐 아니라 완형에 가깝고 뒷면에 새겨진 문양도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 청동기 주조기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 및 관리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잔무늬청동거울은 약 60점이며, 그 중 전(傳) 논산 잔무늬청동거울은 국보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고, 화순 대곡리 적석목관묘 출토 잔무늬청동거울은 함께 출토된 팔주령(八珠鈴), 쌍주령(雙珠鈴) 등과 함께 국보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완주 갈동 5호 토광묘와 7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잔무늬청동거울 2점은 전(傳) 논산 잔무늬청동거울이나 화순 대곡리 잔무늬청동거울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문양이 매우 정교하고 잘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초기 철기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잔무늬청동거울로 판단되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완주 갈동 출토 잔무늬청동거울 2점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이 명확할 뿐 아니라 완형에 가깝고 뒷면에 새겨진 문양도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 청동기 주조기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 및 관리할 필요가 있다.
보물보물 제 2124호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수량
- 1쌍 2점
- 지정일
- 2021. 4. 21.
- 시대
- 백제 5세기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에 위치한 4기의 대형 분구묘(墳丘墓)를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2009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발굴했다. 4호 석실은 전혀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 여기에서 금동신발 한 쌍이 무덤 주인공의 양쪽 발에 신겨져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출토되었던 것이다. 이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장례 때 의례용으로 사용된 신발로서 삼국시대 백제의 전형적인 형태와 문양을 보여주는 금속공예품이다.
금동신발의 전체 형태를 보면, 발목깃을 갖추어 앞쪽은 뾰족하면서 약간 위로 들렸고, 중간 바닥이 편평하며, 뒤쪽은 약간 좁아져 둥근 편이어서 흡사 배 모양을 연상케 한다. 투각(透刻)의 육각형으로 구획된 형태 안에 용, 인면조신(人面鳥身, 사람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 쌍조문(雙鳥文), 괴수(怪獸), 연꽃 등 각종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신발 바닥에는 1.7㎝ 높이의 뾰족한 못 18개를 규칙적으로 붙였고, 내부에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하였다.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현재까지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약 20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이며,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魚子文, 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되어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신발과 마찬가지로 바닥판과 좌우측판, 발목깃판으로 구성되고 바닥에 징(스파이크)를 박은 백제 금동신발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중앙 권력자가 제작해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지배층에게 내려준 ‘위세품(威勢品)’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백제 시대 의례용 금동신발로서, 보기 드물게 원형을 갖추어 출토된 중요한 고대 금속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하고 뛰어난 공예기법을 이용해 제작된 것으로, 5세기 중반 백제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금동신발의 전체 형태를 보면, 발목깃을 갖추어 앞쪽은 뾰족하면서 약간 위로 들렸고, 중간 바닥이 편평하며, 뒤쪽은 약간 좁아져 둥근 편이어서 흡사 배 모양을 연상케 한다. 투각(透刻)의 육각형으로 구획된 형태 안에 용, 인면조신(人面鳥身, 사람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 쌍조문(雙鳥文), 괴수(怪獸), 연꽃 등 각종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신발 바닥에는 1.7㎝ 높이의 뾰족한 못 18개를 규칙적으로 붙였고, 내부에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하였다.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현재까지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약 20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이며,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魚子文, 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되어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신발과 마찬가지로 바닥판과 좌우측판, 발목깃판으로 구성되고 바닥에 징(스파이크)를 박은 백제 금동신발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중앙 권력자가 제작해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지배층에게 내려준 ‘위세품(威勢品)’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백제 시대 의례용 금동신발로서, 보기 드물게 원형을 갖추어 출토된 중요한 고대 금속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하고 뛰어난 공예기법을 이용해 제작된 것으로, 5세기 중반 백제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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