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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미술공예실 내부 사진
Gallery of Arts and Crafts미술공예실
미술공예품은 진리와 일상을 예술로 끌어올린 인간의 솜씨와 정신을 담고 있다. 한국인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의식 속에는 삼국시대부터 함께한 불교가 깊게 녹아 있다. 불교미술에서는 사찰의 대표 예술품을 마주하며 우리나라 불교에 담긴 정신과 미의식을 느낄 수 있다. 도자기는 흙, 불,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예술품이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유약과 화려한 문양 장식, 분청사기의 일정한 형식과 그와 상반되는 자유분방한 무늬, 백자에 담긴 고상한 품격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공예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쓸모 있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들이 금속, 나무 등 자연에 있는 재료로 도구를 만든 일상 속 예술품을 만날 수 있다.
미술공예실
미술공예실 내부 배치도

전북의 불교문화

  • 202금동보살상
  • 204전 남원 출토 금동사리기, 천부상
  • 205향완
  • 206전 낙수정 출토 범종
  • 207쇠북
  • 208용부늬대야

전북의 도자문화

  • 209청자편
  • 210청자 꽃모양접시
  • 211청자 고리무늬의자
  • 212청자 참외모양 주전자·청자 잔과 받침
  • 213청자편
  • 214고려백자편
  • 215청자 잔과 받침
  • 216청자 국화무늬 접시
  • 217청자 포도무늬 주전자
  • 218청자 용무늬 매병
  • 219분청사기 물고기 무늬 항아리

목공예와 한지공예

  • 220경상
  • 221태국무늬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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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 - 진리를 담다

전시실 소개

불교는 이 세상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통해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로, 기원전 6세기 무렵 인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불교미술에는 불교를 널리 알리고 여러 부처를 기리고자 만든 회화, 조각, 건축, 공예품 등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중국 불교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한국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우리의 미의식을 담은 예술품을 만들어 불심佛心을 표현했습니다. 예배 대상이자 예불 도구로 쓰였던 불교 미술품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식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전 낙수정 출토 동종(보물)
1999년 7월 다카하라 히미꼬(高原 日美子)라는 여인이 일본 후쿠오카현청교육위원회를 방문하여 한국 종 1구를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위원회는 여사에게 원 소유국의 문화기관에 기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을 하였고, 고심 끝에 여사는 같은 해 10월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기증할 것을 약속했다. 같은 해 11월 5일 동종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고향을 떠난 뒤 실로 73년 만에 그리운 고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이 동종은 2001년 9월 21일 보물 제1325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 동종이 국립전주박물관의 소장품이 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3대 조선총독인 사이또 마코토(齊藤實)가 1926년 일본 수성원(水城院)에동종을 기증하면서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이또의 편지에 따르면 동종은 당시 전주면(全州面)에 살던 박모(朴某)가 자신 소유 낙수정(樂壽亭) 수리 시 땅 속에서 발견한 것으로써, 1916년 경성(京城)에서열린 공진회(共進會)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동종의 원소재지가 전주였던 것이다. 한편 동종이 발견된 곳에서 1909년에 '開元寺'(개원사)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동종은 전주 개원사라는절에 걸려있던 종으로 어느 때인지 모르지만 종을 매다는 부분이 깨어지자 땅속에 묻혔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개원사는 폐사되고 조선시대 낙수정이라는 정자가 들어섰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 낙수정 동종은 통일신라동종을 연상시키면서도 고려 초 동종의 세부 표현과 유사한 것으로 미루어 10세기 중엽에서 11세기 전반에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 동종과 흡사한 종이 일본 원청사(圓淸寺)에도 있다. 이 두 종은 크기는물론이고 넝쿨무늬·비천 등의 모습까지도 유사하여 같은 장인(匠人)이 동일한 문양판(文樣板)을 사용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불가(佛家)에서 동종의 소리는 '일승지원음(一乘之圓音)', 즉 '부처의 소리'를 의미한다. 또 종을 매다는 부분의 대나무 관과 같은 음통은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萬波息笛)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천년 전 옛 전주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고 소원을 들어주었을 이 동종의 소리는 지금도 국립전주박물관 전시실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김제 대목리 출토 판불
1980년 3월 7일 김제시 성덕면 대목리 탄상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이 집 근처 자신의 밭(대목리 산29번지)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던 중 불상이 새겨진 작은 동판 4개를 발견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세간의 화제가 됐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 익산 등지에서만 확인되던 백제의 불상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발견된 4점의 크기나 조각은 제각각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동판(7.3×7.8cm)에는 화려한 장막 아래 부처와 꽃을 든 두 구의 보살을 새겼다. 두 번째로 큰 것(6.8×6.8cm)에는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한 나한상을 조각했다. 세 번째로 큰 것(8.8×5.0cm)에는 감실 안 나한상을 상하 7구씩 총 14구를 조각했으며, 가장 작은 것(3.5×6.1cm)에는 감실 안에서 선정하고 있는 부처를 새겼다. 이 조각상들은 서산 마애삼존불,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삼존불 등삼국시대 7세기 중엽 불상과 유사한 면모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대체로 650년 무렵에 백제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의식이나 예배의 대상으로는 작은 이 판불을 어떻게 사용됐을까. 한 편에서는 큰 판에 부착하여 벽면을장식됐을 것으로 여겨졌고, 또 다른 편에서는 가장 큰 판불에 달려있는 네 개의 다리와 판불 가장자리가 움푹 들어가 있는 점을 근거로 얇은 판을 두드려 만드는 압출불(壓出佛)을 만들 때 썼던 틀로 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표면에대한 성분 분석 결과 금(Au) 성분이 나와 압출불의 틀이 아닐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사찰에서 개금불사가 발견되는 데다 도금은 후대에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압출불의 틀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판불이 발견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백제의 불상은 부여, 공주, 익산 등 중요한 도시와 백제에서 중국으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 예산, 서산, 태안 등에만 발견됐다. 이 판불이 출토된 김제시 성덕면 대목리가 백제에서 중요했던 곳이라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판불이 발견된 2년 뒤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에서도 백제 석불 2구가 발견됐는데, 백제의 중방성으로 여겨지는 고부와 매우 가까운 곳이다. 김제 대목리 출토 판불과 정읍 보화리 석불입상은 백제가 중국으로 가는 교통로뿐만 아니라 중요한 남방 교통로를 뜻한다 하겠다.

도자 - 생활과 어우러지다

전시실 소개

도자기는 흙, 불,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예술품입니다.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청자에서 분청사기로, 그리고 다시 백자로 변화하면서 도자기의 제작 기술, 형태, 색채, 미적 감각의 범위 등이 점점 넓어지고 다양해졌습니다. 도자기에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신념, 취향, 예술 등이 녹아 있습니다. 고려의 단정한 순청자와 세련된 상감청자, 조선의 투박하지만 자유로운 조형미의 분청사기, 고상함과 함께 실용성을 담은 백자 등에서 시대와 사용 계층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도자기는 각종 의례에서 일상생활까지, 상류층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도자기에는 옛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미의식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하늘을 품은 고려의 청자 고려청자는 귀족문화와 불교문화에서 출발하여, 중국과는 다른 고려만의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형태, 색, 문양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흐르는 듯한 선의 유려함, 비취옥과 같은 푸른색인 비색翡色 유약의 맑고 투명함이 구름과 학, 들꽃, 버드나무 등 자연을 담은 서정적인 문양과 잘 어우러지면서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입니다. 고려청자의 문양에는 천년의 오랜 삶과 고고함을 상징하는 구름과 학, 한적한 물가의 풍경 등 고려 사람들이 동경했던 이상 세계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고려청자는 고려 사람들의 수백 년 동안의 삶과 염원을 담았기에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하늘을 품은 고려의 청자
고려청자는 귀족문화와 불교문화에서 출발하여, 중국과는 다른 고려만의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형태, 색, 문양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흐르는 듯한 선의 유려함, 비취옥과 같은 푸른색인 비색翡色 유약의 맑고 투명함이 구름과 학, 들꽃, 버드나무 등 자연을 담은 서정적인 문양과 잘 어우러지면서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입니다. 고려청자의 문양에는 천년의 오랜 삶과 고고함을 상징하는 구름과 학, 한적한 물가의 풍경 등 고려 사람들이 동경했던 이상 세계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고려청자는 고려 사람들의 수백 년 동안의 삶과 염원을 담았기에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바다를 품은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고려 상감청자의 뒤를 이어 조선 초 15-16세기까지 만들어진 도자기입니다. 바탕흙과 유약은 고려 말기에 제작된 청자와 비슷하지만, 그릇의 종류나 형태, 문양 구성 등은 확실히 다릅니다. 조선 초에는 분청사기가 왕실에서 일반 대중까지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했던 분청사기는 정형화된 문양이 있으며, 관청 이름, 만든 사람 등 여러 정보가 쓰여 있습니다. 일상에서 사용한 분청사기는 자유분방하고 생동감 넘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백자를 점차 즐겨 사용하면서 분청사기는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조선 선비를 닮은 백자
백자는 조선의 기술력과 예술성을 두루 담아낸 도자기입니다. 조선 초부터 각종 의례 때 사용하는 도구를 비롯하여 접시, 항아리, 병 등의 생활 용기가 백자로 만들어져 조선 사람들의 생활 속 깊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백자의 소박하면서도 깨끗한 기품은 성리학의 청렴하고 검소한 삶을 중요하게 여긴 가치와 꼭 들어맞았습니다. 그래서 희고 깨끗하며 단단한 조선의 백자는 당시 선비들이 선망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연적, 필통 등 각종 문구류와 제사 용기들이 만들어졌고, 민화가 유행하면서 백자에도 민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공예 - 일상을 꾸미다

전시실 소개

공예는 생활과 예술, 과거와 미래를 잇는 매개체입니다. 장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기법을 익혀 새롭게 발전시키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금속 공예품은 종교와 일상이 만난 예술이며, 목가구와 나전칠기 등은 실용성과 예술성을 갖춘 조형물입니다. 자수 공예품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손길로 만든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매체이자 생활 도구입니다. 한지 공예품은 한지로 생활 소품과 장식품을 소박하면서도 실용적으로 만들어 실용미와 자연미가 잘 어우러집니다.

금속에 새긴 화려한 문화
금속 공예는 광석에서 추출한 금, 은, 동, 철, 구리 등을 재료로 생활용품이나 장식품을 만드는 공예입니다. 금속은 열을 가하면 두드릴 때 늘어나는 성질이 있어서 세련되고 정교한 공예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고대국가의 금속 공예품은 계급과 신분을 명확히 구분하고 드러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정교한 기법으로 제작된 고려의 금속공예는 화려하고도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 줍니다. 조선의 금속공예품은 형태가 단순하고 자유분방하며, 화려함보다는 실용성과 소박함이 느껴집니다.
자수의 꽃을 피우다
자수는 바늘땀으로 이루어진 흔적으로 조형, 문양, 색채, 질감 등을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자수를 놓는 소재는 섬유 외에도 가죽, 새털 등 다양합니다. 제작 도구와 수법이 간단하고, 자연의 문양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여성들은 조개껍데기, 동물의 뿔, 거북 껍데기 등 고급 재료로 만든 바느질 도구로 부귀영화, 불로장생 등 염원을 담은 각종 생활용 자수 작품을 직접 만들어 가족과 함께 사용했습니다.
종이에 담은 일상
한지 공예는 민간에서 발달한 실내 문화로, 종이 한 장도 소중히 여기며 되풀이하여 사용한 우리 조상의 생활 정신과 검소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질기고 부드러운 한지의 질감과 색상은 우리 민족의 심성과도 잘 어우러집니다. 한지 공예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종이를 꼬아 만든 지승 공예, 종이 낱장을 여러 겹 붙이거나 종이를 이겨 골격을 만드는 지호 공예, 그리고 다양한 문양의 색지로 앞면을 장식하는 전지 공예, 색지 공예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전과 화각, 일상을 찬란하게 비추다
나전 공예는 조개껍데기를 얇게 잘라 자개를 만들고, 자개로 문양을 만들어 장식하는 기법으로 만든 공예입니다. 자개에 영롱한 빛이 반사되면 그 화사한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 화각 공예는 나무로 만든 가구나 소품 위에 얇게 깎아 다듬은 쇠뿔을 붙여 장식하는 기법으로 만든 공예입니다.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게 세공된 쇠뿔을 통해 채색한 그림이 은은하게 비쳐 보이며 부드럽고 우아한 장식 효과를 나타냅니다. 바탕의 흑칠黑漆과 주칠朱漆은 나전 공예와 화각 공예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나무에 담긴 삶의 숨결
목공예는 나무로 만드는 공예품입니다. 나무의 다양한 색과 무늬는 여러 가지 질감을 보여주며, 따뜻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나라의 목공예품은 아름답고, 간결하고, 비례가 뛰어나며, 자연 나뭇결이 잘 살아 있는 등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품격이 있습니다. 정교한 조각이나 화려한 칠을 멀리하고 짜임과 이음 기법으로 목가구를 제작했습니다. 결합 부위에 힘을 더하는 장석도 꼭 필요한 경우와 나무의 질감을 강조해야 할 때만 사용했습니다.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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