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조선 왕실의 본향
- 301<태조어진>
- 302『용비어천가』
- 303이화개국공신녹권
- 304예종 태항아리 외호
- 305조경단비 탁본
- 306고종황제 어보
- 307『선원계보기략』
- 308『경기전의』
- 309《전주부지도》
- 310사랑방
임진왜란과 『조선왕조실』 수호
- 311실록상자
조선 왕실의 문화
- 312《신구법천문도》
- 313《사찬첩》
- 314<전주부 지도>
- 315『맹자』
- 316채용신 필 《무이구곡도》
전주, 조선왕실의 본향
전시실 소개
태조 이성계(1335-1408)가 세운 조선(1392-1910)은 전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통일신라 문성왕(재위 839-857) 때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이 이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전주는 왕실의 본향이 된 것이다. 조선의 여러 왕은 자신의 뿌리가 비롯된 풍패지향 전주를 역사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왕과 왕실 자손의 태를 묻는 길지로 전주를 택했으며 국가의 중요한 기록을 보관하는 사고를 전주에 세웠다. 또한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 시조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 시조의 묘역인 조경단을 정비하고 대대로 제사를 모시기도 하였다.
임진왜란과 『조선왕조실록』 수호
전시실 소개
1592년 왜적이 전주를 침범하자 관원과 백성들은 전주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 과 경기전에 모신 <태조어진>을 내장산으로 이안시키며 수호하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 과 경기전의 <태조어진>은 본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두 지역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왕실의 문화
전시실 소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이래 500여 년 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천문학, 초상화, 기록문화 등의 왕실문화가 발전하였다. 찬란하게 발전한 왕실 문화는 민간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화가 채용신(1850~1941)은 왕실문화가 민간으로 퍼져나가는 변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태조,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문조, 헌종의 어진 모사와 고종 어진을 주관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채용신은 1906년 고향 전북에 돌아와 초상화 제작의 상업화와 초상화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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