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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새, 사람을 품은 신발 - 고창 봉덕리 금동장식신발

  • 작성자플랜아이
  • 작성일 2023.06.29
  • 조회수263
용과 새, 사람을 품은 신발 - 고창 봉덕리 금동장식신발<br/>임혜빈(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br/>여기, 약 1500년 전에 만들어진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습니다. 지난 2021년 새롭게 보물로 지정된 고창 봉덕리 출토 금동장식신발입니다. 일반적으로 ‘신발’은 걷거나 뛸 때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이 신발의 생김새는 우리에게 익숙한 신발과는 조금 다릅니다. 길이는 약 330mm로 훨씬 길고, 바닥에는 뾰족한 스파이크가 있습니다. 또, 옆면과 바닥은 여러 가지 무늬로 장식되어 있어서 화려한 모습을 자랑합니다.<br/><br/>  삼국시대에는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한 여러 종류의 물건들을 무덤에 함께 묻었는데, 이를 껴묻거리(副葬品)라고 합니다. 고창 봉덕리에서 출토된 금동장식신발 역시 이곳에 묻혔던 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물건들 중 하나였습니다. 금동장식신발은 주로 권력자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던 위세품(威勢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화성 요리, 공주 수촌리, 무령왕릉, 익산 입점리, 고창 봉덕리, 나주 복암리, 신촌리, 정촌, 경주 식리총, 황남대총 등의 유적에서 약 50여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고창 봉덕리에서는 무덤 주인의 발치에서 금동장식신발 한 켤레가 출토되었는데, 오른쪽 신발 내부에서는 뼛조각도 확인되었습니다. 신발의 안쪽과 바깥쪽에 작은 직물 조각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은 자의 발에 착용된 채로 묻혔던 것으로 보입니다. 평소에 신었던 신발이라기보다는 죽음 이후 망자의 여정을 위한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br/><br/>  신발의 옆면은 두 개의 넓은 금동판을 합쳐서 만들었는데, 앞 코와 뒤축에 작은 못을 여러 개 박아 고정하였습니다. 옆판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 아래로 불꽃을 형상화한 무늬가 있고, 그 사이에는 꼭 거북이 등껍질과 같은 육각형 무늬가 반복적으로 이어집니다. 그 안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용과 새, 사람 얼굴 모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늬는 금동판의 일부를 도려내어 나타내었는데, 이를 ‘투조(透彫) 기법’이라고 합니다. 바닥판 역시 투조 기법을 사용하여 불꽃무늬와 함께 용, 새, 사람 무늬를 나타내었고, 총 18개의 꽃무늬 중앙에는 뾰족한 스파이크가 부착되었습니다. 세밀하고 정교하게 구사된 장식 무늬들은 고대인들의 수준 높은 금속공예 기술 수준을 보여줍니다. 한편 에다후나야마 고분(江田船山古墳)과 카모이나리야마 고분(鴨稻荷山古墳) 등 일본의 고분에서도 백제계 금동장식신발이 확인되어 당시 백제와 왜가 정치·문화적으로 밀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br/><br/>  뿐만 아니라 무덤 안에서 금동장식신발과 함께 발견된 껴묻거리 중 중국제 청자, 작은 단지로 장식한 구멍 항아리는 각각 중국과 일본에서 건너온 물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동장식신발의 기술적 우수성, 국제성과 더불어 외래계 물건이 함께 출토되는 현상은 당시 고창 지역의 정치 세력이 백제 중앙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과의 문화적 영향 관계에 있었던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br/><br/>*국립전주박물관 상설전시관 ‘역사실’에서 전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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