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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 여기에서 다시 만나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도록

  • 작성자플랜아이
  • 작성일 2023.08.29
  • 조회수276
언젠가 우리 여기에서 다시 만나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도록-<br/><br/>  가까운 벗들과의 만남도, 왕세자 탄생 같은 국가적 경사도, 글이나 그림으로 남아 있다. 덕분에 우리는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사람들과의 인연, 멋진 풍경, 특별한 행사를 어떻게 기억하고자 했는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br/>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아주 특별한 순간- 그림으로 만나다>에서는 이러한 그림을 좀더 쉽고 재미있게 선보이고자, 여러 매체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제작한 전시안내 활동지, 전시품을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영상, 큰글씨와 점자로 제작된 도서 뿐 아니라, 전시를 모두 감상하고 난 후 ‘나의 특별한 순간’을 아크릴에 그려 게시대에 전시해 보는 체험코너까지 모두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br/>	전시장에는 2개의 영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첫 번째 영상은 15년 전 기록 속의 구룡폭포를 그린 이인상의 작품을 소재로 만들었다. <br/>	<br/>  15년 전 기억 속의 구룡연을 그리다<br/>   1752년 어느 날, 이인상은 종이 위에 필선만으로 무미건조한 구룡폭九龍瀑을 그렸다. 구룡폭은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毗盧峯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동쪽으로 내려와 여러 골짜기를 거쳐 한데 모인 후, 120여 미터의 절벽 아래로 쏟아져 내린 폭포이다. 워낙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화가들이 그렸던 명소인데, 이인상의 구룡연은 특별하다. 15년 전인 1737년 19년 연상인 임안세任安世(1691~?)와 함께 보았던 구룡폭을 떠올리며 그렸기 때문이다. <br/>  화면에 희미하게 폭포 물줄기가 보인다. 메마른 붓으로 간단한 선염조차 생략하고 절벽과 폭포의 뼈대만 그렸다. 화가는 스스로 ‘일부러 색을 칠하지 않았다’고 했고 ‘마음으로 이해한 것[心會]을 그렸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과감한 재해석의 결과였음을 알게 된다. 폭포를 그리고 있지만, 이인상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인과 동행했던 그 순간의 감회였던 것이다. 이인상의 마음 속에서 폭포는 어두운 밤 배경으로 금색이 되어 변화무쌍하게 춤추듯 흐르다가, 마침내 시원한 물줄기를 이루며 쏟아져 내린다. 영상은 그런 이인상 ’마음 속 폭포’ 바로 그 찬란한 모습을 구현하고자 했다. 금강산을 유람한 많은 화가들이 구룡폭포를 그렸지만, 이인상의 그림은 그래서 많이 다르다. <br/>	<br/>  전주화원 채용신을 추천하다 <br/>	두 번째 영상은 채용신蔡龍臣(1850~1941) 평생도다. 10폭의 병풍에 담긴 채용신 일생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제5폭 1900년에 태조 어진을 그리는 장면이다. 1900년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돌아온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1897년 2월 20일 고종은 경운궁(순종대에 덕수궁으로 명칭 변경)으로 환궁하자마자 선원전 건설을 서둘렀고, 6월 22일에는 어진들도 선원전으로 이안移安했다.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고종은 조경단 조성과 더불어 태조 어진 모사를 통해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지방 화원이었던 채용신을 어진 모사 작업에 추천한 것은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 민병석閔丙奭(1858~1940)이었다고 한다. 주관화사 2명(조석진, 채용신), 동참화원 7명(백은배 등), 도화주사 4명(윤석영 등), 장황인 5명(한응창 등) 등 태조어진 모사 작업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하는 화가는 30명에 이르렀다. <br/> <br/>  채용신은 어진을 모사한 공으로 칠곡군수, 정산군수 등의 벼슬을 하게 되었다. ‘어진을 그렸던 화사’라는 명성은 그의 고향인 전라북도 지역에 자자하게 퍼졌고, 80이 넘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아들, 손자와 함께 익산, 정읍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초상화 뿐 아니라 산수화 화조화도 주문 제작하며 여생을 살았다. 어느날 채용신의 머릿속에 눈부시게 찬란했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태조 어진 제작에 참여했던 경험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을 담은 10폭의 병풍 <평생도>는 이번 전시의 꽃이다.  나만의 초상화를 간직하고 싶은 대중의 수요를 재빠르게 파악하여 초상화를 상업화하였던 채용신은 자신의 일생을 자랑스럽게 여겨 자손들에게 보여주고자 평생도를 제작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 선비의 일생을 담은 평생도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와는 많이 다른 자신만의 평생도를 제작했다. 부부가 함께 60세가 되었음을 축하하는 회갑 잔치 장면으로 병풍은 끝난다. ‘나를 위한, 내 인생을 기념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그림’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br/>	전시장에는 평생도를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가로 7미터 규격의 영상실에 상영되는 평생도 영상에서는 관람객이 선택한 각 폭의 인물과 동물의 안내를 따라 그의 시각에서 화면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강아지를 따라 가면서 8살 채용신이 주경야독하며 아버지에게 글을 배우는 장면을 구경하고, 마을 사람들을 따라가 생생하게 채용신의 혼례식을 함께 구경할 수 있으며, 채용신의 손끝이 움직이면서 태조 어진이 완성되는 모습도 감상해 볼 수 있다.  <br/>언젠가 우리 다시 여기에서 만나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2023년 9월, 전주에서 가족들과 지인들과 특별한 순간을 남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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