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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주박물관의 새로운 소장품을 소개합니다 - 석지 채용신이 그린 호랑이 그림

  • 작성자플랜아이
  • 작성일 2024.01.30
  • 조회수220
[소장품 소개]<br/>국립전주박물관의 새로운 소장품을 소개합니다<br/>- 석지 채용신이 그린 호랑이 그림<br/><br/> 민길홍(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br/><br/><br/>그림. 영모도, 1910년 이전 <br/>종이에 먹, 안료 紙本淡彩<br/>132.5×43.0cm, 국립전주박물관<br/> <br/>  국립전주박물관의 새로운 소장품이 된 동물 그림 [영모도] 한 점이 있다. 바로 호랑이를 그린 그림이다. <br/>  채용신(1850~1941)은 태조, 고종의 초상을 비롯하여 전라북도 지역 명사들의 초상을 그렸던 화가로 이름이 나 있지만, 그 밖에도 산수화와 화조·영모화, 고사인물화 등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두루 다루었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로 알려진 박인규朴寅圭는 “전 정산군수 채공은 평소 이 일을 일삼아 무릇 사람과 산수, 화목 부류에 칼을 대면 그림이 살아나지 않음이 없었고, 학이 못에서 울면 그 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지는 듯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동안 채용신에 대한 연구와 전시는 초상화를 중심으로 이어져왔으나, 근래 새로운 자료의 발굴로 채용신이 화조·영모화도 잘 그렸음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br/>  달을 배경으로 어미호랑이와 새끼호랑이 두 마리를 화면 상단에 그렸다.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다람쥐 두 마리를 배치하였다. 상단에는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941~1910)이 묵서를 적었다. 김제 출신 이정직은 채용신보다 9살 위의 문인으로, 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다 1894년 동학농 민운동때 전주성이 함락되고 집이 불에 탄 이후 김제로 돌아와 서화에 매진하며 후학을 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정직이 쓴 제시는 다음과 같다. <br/><br/>높은 구름은 기운 쫓아 떠 있고, 대지大地는 소리 따라 흔들리네 <br/>高雲逐氣浮, 厚地隨聲震 <br/>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이 (김제) 요교蓼橋 호문당好問堂에서 그리다 <br/>石芝蔡龍臣作于蓼橋好問堂中 <br/> <br/> 중국 당나라 저광희儲光羲의 <맹호사(猛虎詞)> 일부를 옮겨 적었고, 김제 호문당好問堂에서 그렸음을 밝혔다. 호문당은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1882-1956)의 정사다. 송기면은 이정직 가까이에 머물면서 조석으로 모셨던 제자로, 5세 때 부친이 타계하여 모친은 이정직을 집으로 모셔와 송기면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정직을 통하여 시 문과 서화, 예술 이론, 천문과 지리, 역산曆算과 의학 등 실용적 지식을 포함한 박학적 학풍의 진수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지금 김제에 그의 요교정사로 불리는 곳에는 석촌石邨 윤용구尹用求(1853-1937)가 ‘호문당’이라고 쓴 편액이 남아 전하고 있다. 송기면은 이곳에서 이정직의 뒤를 이어 후학을 양성하였다고 한다. 이정직의 몰년이 1910년이기 때문에, 이 그림의 제작연대는 1910년이 하한이 된다. 1906년에 정산군수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정읍 일대에 머물면서 주문받은 초상화를 그려주었던 것으로 『석강실기』를 통해 확인되는데, 김제 일대에서도 그를 모셔다가 그림을 요청하였던 사실이 김제 일대에 전해 내려온다. 이 그림은 그러한 구전되어온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br/>  그런데 이 그림에는 채용신의 도장 세 개가 찍혀 있다. 나뭇잎 모양 두인 頭人[글머리에 찍는 도장]과, ‘석지石芝’, ‘정산군수채용신신장定山郡守蔡龍臣信章’ 두 개의 주문방인이다. 이 도장은 크기와 새긴 각의 모양까지 채용신의 다른 초상화, 산수, 화조화에 찍힌 것과 동일하다. 동양 그림에서 보통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 직접 글을 쓰고 도장을 찍거나, 혹은 그림을 그린 사람과 다른 제3자가 글을 쓰고 도장을 찍는 경우에도 모두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인장을 글의 말미에 찍는 것이 관례인데, 이 그림에는 이정직이 글을 썼지만, 채용신의 인장이 찍혀 있어 흥미롭다. 이러한 현상은 채용신이 그림을 그린 후 인장만 찍어 주고, 그림을 받은 수령인 혹은 글씨에 능통한 사람이 채용신이 그렸음을 대신 적어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글을 이정직이 썼음은 서체의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다. <br/>  언덕 너머 달이 떠 있는 바다를 향해 새끼 호랑이 두 마리를 거느리고 나아가고 있는 어미 호랑이가 그려졌다. 하단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살짝 앞뒤로 배치되어, 농담의 차이를 두고 묘사됨으로써 공간감을 살리려고 노력하였다. 다람쥐는 한 마리는 소나무 가지 위에서 두 손을 모은 자세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아래쪽에 다리를 번쩍 들고 뒹굴고 있는 모습이다. 다람쥐는 주로 포도를 그린 민화에 등장하는 소재인데, 채용신은 호랑이와 다람쥐를 함께 등장시켰다. 이러한 소재의 구성은 매우 독창적이며, 부드러운 선묘와 담백한 채색을 구사하여 산뜻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말~20세기말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전라북도 서화계의 양대 산맥, 채용신과 이정직. 완전히 다른 서화세계를 지향하고 작품으로 남겼던 두 사람의 접점을 그동안 찾을 수 없었는데, 채용신과 이정직 그 둘의 만남을 이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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